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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홍른 웹진 참여 글 입니다.
“혼자서 집 볼수 있지? 조슈아? 나랑 미리암이랑은 한 두시간 뒤에 돌아올꺼야. 배고프면, 넌 뭐 한번도 그런 적이 없지만 냉장고에 냉동피자 있으니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어. 사실 별 걱정은 안된다. 넌 착한 아이 잖아.”
-”네, 엄마.”
지수는 평소처럼 웃으며 양어머니와 양누나를 배웅했다. 하지만 손바닥은 땀에 젖어 가만히 두지를 못하고 둔탁하게 울리는 심장 소리는 너무나 크게 울려 두 사람에게 들릴까 걱정될 정도였다. 아무 눈치 못 챈 두사람이 손을 흔들고 문을 나서자 지수는 빠르게 하지만 살금살금 윗층으로 올라갔다. 차에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들이 탄 파란 쿠퍼가 창문의 프레임 밖으로 벗어난 걸 확인한 지수는 살금살금 미리암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살며시 열자 달콤한 바닐라 향의 향수와 방향제가 섞인 공기가 지수를 감쌌다. 그 방은 평소와는 사뭇 기분이 달랐다. 다른 때는 이 방은 그저 호기심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자신의 투박한 방과는 비교되게 섬세하고 반짝거리면서도 예쁜 색감으로 가득차있다. 홀로 그 안에 서있으니 이제 이 방은 꼭 지수의 방 같았다. 지수는 기대감으로 발발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양누나의 옷장을 열었다. 아, 지수는 탄식을 뱉을 수 밖에 없었다. 여러가지의 촉감, 크고 작은 정교한 러플과 스팽글, 그 옷들은 오히려 주인에게 걸쳐지지 않았을 때가 더 예뻤다. 그 속을 헤집으며 지수는 항상 마음 속에 간직했던 하늘색 원피스를 찾았다. 그 옷은 누나의 남자친구가 그녀의 열여섯 번째 생일날 선물해준 것인데 이제는 그녀에게 작아져 몇번 꺼내어 대보고 한숨 쉬고 하는게 다였다. 지수가 그 옷을 찾자 다른 의미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목과 소매에 자잘하게 붙은 레이스나 잘록하게 파진 허리라인이나 안예쁜 구석이 없었다. 지수는 조심스레 마치 그 옷이 놓치면 흩어질 종이 꽃 마냥 천천히 입어보았다. 어린 지수에게 당연하게도 그 옷은 조금 컸지만 지수에게는 상관 없었다. 마치 마법에 걸린 것 같았다. 지수는 원피스 끝자락을 두 손가락으로 잡고 살짝 올려보기도 하고 자신의 짧은 머리카락을 귀뒤로 넘겨 보기도 하였다. 기분이 좋아진 지수는 미리암의 크림색 화장대 앞에 앉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아기자기한 모양의 향수를 지수는 그녀가 하던대로 손목에 칙 뿌리고 어설프게 목 뒤에 문질러 보았다. 달달한 향이 지수를 감싸고 절로 달콤해지는 느낌에 지수는 두 손을 모으고 거울 속 자신을 보았다. 열두살 지수는 정말 예뻤다. 투명하고 꾸밈없이 그런 모습이 지수 자신에게는 조금 심심해 보였다. 이내 그는 미리 골라 놨던 옅은 빨강의 립글로즈를 찾아 어깨 넘어로 보았던 누나들의 모습을 따라해보았다. 아직 까지 흥분에 달달 떨리는 손을 다른 손으로 꼬옥 잡고 살며시 입술로 가져갔을 때,
“언니! 나 언니 가방 좀 빌릴게!”
지수는 헉 하고 숨을 들이 마셨다. 둘째 누나 였다. 마리는 양어머니나 미리암과는 다르게 항상 입양된 지수에게 쌀쌀 맞고 괜히 눈에 안 띄는 곳에서 욕을 퍼붓거나 머리를 쥐어 박기도 하였다. 놀란 지수의 손에서 립글로즈가 떨어졌다. 빨간색 끈끈한 액체가 천천히 흘러나와 바닥을 더럽혔다.
‘오, 하느님. 제발 저년이 올라오다가 계단에서 넘어져 다리가 부러지게 해주세요. 아니면 아무나 데려가든지.’
지수는 몸을 어째 가누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앉아 문을 쳐다만 볼 수 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지수의 간절한 기도는 닿지 않아 마리는 벌컥 그 문을 열어 제꼈다.
“어머 깜짝이야. 이 새끼 여기서 뭐하는 거야.”
놀란 건 지수 만이 아니었다. 지수는 하필 걸려도 저 것한테 걸리냐며 발끝만 바라보았다. 고개를 차마 들 수가 없었다. 팔짱을 낀 마리는 대충 상황 파악이 끝났는지 피식 웃었다.
“그래, 너도 이쁜 구석만 있을 수는 없지. 그지? 난 이미 눈치챘거든 너한테 냄새나는 구석이 있는거는. 그런데 겉으론 그렇게 착한 척 웃으면서 이렇게 변태같은 성향이 있는 줄은 몰랐다 애기야.”
지수는 눈 앞이 뿌옇게 지면서 아까와는 다른 이유로 몸이 덜덜 떨려왔다. 그리고 무자비한 마리의 손은 지수의 사타구니를 꼬집었다.
“아악!”
-”너, 잘 걸렸다. 저번에 나 케빈이랑 자고 왔다고 꼰지른거 내가 몰랐을 것 같아? 자 어떻게 갚을래. 내가 엄마한테 언니한테 얘기해? 어? 얘기해줘?”
“아니, 하지마. 그때 얘기한거 나 맞아 미안해.”
지수는 이제 목 놓아 울면서 마리의 어깨를 꽉 잡았다. 그녀는 매정하게 그 작은 손을 뿌리치고 꼬집은 부분을 더욱 비틀었다.
“윽. 마리, 미안해 정말 나 이젠.. 네 얘기 함부로 안할게.”
-”그 것만? 앞으로 내가 뭘 시켜도 군말 없이 하겠다고 약속해.”
“...”
-”싫어?”
“아냐 할께. 누나. 이제 놔줘.”
지수는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허벅지 살점에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지수의 대답을 들은 마리는 그제야 손을 떼고 힘을 주어 머리를 한대 내리쳤다.
-”약속한대로 일단 엄마 오면 엄마한테 전에 한 개소리 거짓말이라고 해명하고 와.”
그 날 이후로 지수는 집에 오기 두려울 정도로 마리에게 시달렸다. 아무런 이유 없이 자신이 화난다고 폭력과 폭언을 휘두르기는 예사일 정도 였다. 가끔 화장실을 청소시키기도 하고 추운 겨울날 옷 한겹만 입고 밖에서 잠을 자게 하기도 했으며 심한 경우 자신의 생리혈이 묻은 속옷 빨래를 시키기도 했다. 그녀의 괴롭힘은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끝날 것 같았고, 정말 이는 그녀가 자신의 고등학교 졸업식 날 누군가가 컵케이크에 숨겨둔 면도칼을 삼켜 과다출혈로 죽은 후에 끝이났다. 그리고 그 날로 지수는 가족들에게 거둬주고 키워줘서 고맙다는 짧은 편지를 남기고 집을 나왔다.
“나쁜 년”
-”자기야?”
과거 기억에 잠겨있던 지수의 입술 새로 그 분노가 슬쩍 새어나왔다. 지수는 이제 연약한 열두 살짜리 소년이 아니었다. 이젠 숨어서 누나의 옷을 훔쳐 입거나 화장품을 몰래 쓰는 날은 잊었다. 돌돌 굴러가던 파란 쿠퍼와는 비교도 안되게 훌륭한 잘 빠진 벤츠를 타고 있었고, 그 운전석에는 자기를 여기까지 이끌어주고 아껴준 그리고 사람자체도 섹시한 남자친구도 있었다. 지수는 지금 가장 핫한 드랙 퀸중에 한명이다.
“지훈아,”
-”왜. 자기야.”
“나는 네가 그 자기라는 호칭 사용할 때마다 꼭 내가 네 애인 여러 명중에 한 명이 된 것 같아.”
-”뭐?”
“아무것도 아냐. 그냥 재미없는 농담이었어.”
-”남자 홍지수 재미없는 건 이미 예전부터 알았는데.”
“그 쪽도 만만치 않거든요 맨날 진지하기만 하고.”
지수는 장난스레 웃고 비내리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밖에 빛나는 차들의 헤드라이트와 도시의 불빛이 창에 맺힌 물방울에 의해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지훈아,”
-”왜.”
역시 빠른 피드백, 지수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 처음 만났을 때, 왜 다른 언니들, 경험도 많고 훨씬 당당한 사람들, 말고 왜 나였어?”
-”제일 예뻐서?”
“뭐… 맞는 말이긴 한데, 이쁜건 코트니 언니도 그렇고 트릭시 언니도 작살나게 이쁘잖아.”
-”나는 그 때 애인 찾으러 온거 아냐. 내가 어떻게 코치해서 도와줄 사람 찾으러 온거지. 다른 사람들은 너무 의욕이 없거나 반대로 너무 거만했어. 그런 사람들은 누가 도와줘도 받아들이지를 못해. 가장 안 좋은 경우는 의욕도 있고 굽힐 줄도 아는데 그냥 재능이 없는 애들도 있었고. 너는 말야… 일단 외적으로는 훌륭했지 너무 말랐던 것만 빼고 꾸미는데 감각도 있었고 너무 부끄러움이 많지도 않았어. 그런데 뭔가 부족했어.”
”캐릭터?”
-“뭐 그 것도 있고. 전체적으로 우울해 보이는 것도 있었고, 그냥 딱 보자마자 아 이 사람은 내가 빈부분을 채워줄 수 있겠다.”
“지금도 다른데 채워주잖아.”
-”풉, 이번엔 웃겼다. 홍지수, 하여튼 그래서 그 때 데려왔어…
집을 나온 지수는 사실 특별한 계획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 다른 지역 출신 친구의 소개로 한 작은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너그러운 주인댁 덕에 지수는 그 식당 옆 작은 방에서 지냈다. 식당은 사람이 복작거렸어도 시끄럽지 않았고 적당히 깔끔하면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정말 평범하다는 말이 딱 맞는 그런 곳이었다. 그 곳에서 지수는 틈만 날때면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종이조각들을 모아 그 곳에 어렸을 때 꿈 꿔왔던 자신의 또다른 페르소나를 그려왔다. 지금 여기 좁은 식당에서 일하는 소심한 지수가 아닌 당당하고 매력있는 지수를 말이다. 그리고 지수는 그 곳에서 바느질과 뜨개질을 배웠다. 스스로 원하는 옷을 고르고 만들어 입는 것은 오랜 지수의 열망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누군가 버린 바비 인형의 옷을 가져와 접착제와 테이프로 튜닝하면서 시간을 보냈으니 지수는 그 일들이 즐거웠다. 어느날 평소와 다름 없이 빨갛게 해가 지던 금요일 저녁에, 평소처럼 술을 마시며 일주일을 마무리하러 모이는 사람들 사이에 지수의 삶에 자극을 가져다 온 손님이 있었다. 물론 지수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은 지훈이지만 그 손님은 지훈은 아니었다. 그 여자를 처음 보았을 때 지수는 눈을 땔 수가 없었다. 진한 화장, 결점 없는 머리와 세련된 조금은 과한 착장 그리고 자신감 넘치는 걸음, 지수가 원하던 모습이었다. 그 여자는 어디 앉을까 눈치를 보지도 자신을 힐끔거리는 사람들 무리도 신경쓰지 않았다. 지수는 설레는 마음으로 메뉴판을 들고 그 여자가 앉은 테이블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여자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우면서도 이상했다. 일단 가녀린 실루엣 사이로 비치는 뼈대가 굵었고 턱선이나 이마 역시도 여자의 것이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지수가 인사를 하고 메뉴판을 건네자 인사를 받는 목소리는 굉장히 낮고 허스키하며 말할 때 목젖이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녀는 지수가 자신이 들어올 때부터 쳐다보던 눈빛이나 지금 이 혼란스러운 표정까지 전부 읽을 수 있었다. 아니 꼭 그녀만 그런 것이 아닌게 아직까지 지수는 감정에 있어서 굉장히 솔직했다.
“저기요?”
-”...아, 네! 뭐 필요한거 있으세요?”
“기네스 한 병줘, 잔은 두개 가져오고. 그리고 사장한테 오늘 뒤로 시간 빼달라고 해. 그 시간 만큼 받을 팁은 내가 챙겨줄 테니까. 대신 너는 나랑 얘기 할거야. 싫으면 그냥 잔 하나만 가져다줘.”
-”아니에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지수는 떨렸다. 정말로 저 여자와 얘기하고 싶었기는 했으나, 어떻게 안걸까. 저의 맘을 꼭 읽은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무례하지 않게 저를 꼭 배려해 주면서. 이 설렘은 꼭 처음으로 원피스를 입어본 날의 그 설렘이었다.
-“안녕하세요. 저 어떻게 부르면 되죠?”
“그 쪽은 이름이?”
-”조슈아요.”
“진짜 이름이야?”
-”네, 저 입양아 거든요… 그런데 그냥 지수라고 불러주세요. 생각해보니 그편이 더 낫네요.”
“그래? 그럼 너도 내 진짜 이름, 제이스로 불러.”
-”저 처음 보는데 정말 예의 없는거 알아요. 그런데 그 것 때문에 저 여기 앉힌거라는 것도 알아요. 그런데 제이스 누나라고 할까요 형이라고 불러야 되나요…”
“언니 아닐까.”
-”네?”
“농담이야. 내 성별은 굳이 얘기하자면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지. 왔다갔다 한다고 해야하나 지금 이 상태는 남들도 나도 여자로 불러. 너 정말로 아직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어?”
-”...”
“드랙퀸 못 들어본거니?”
-”못 들어봤어요.”
“어디 촌에서 컸구나.” 그녀가 킥킥 웃으며 놀리 듯 말했다.
”드랙퀸 들은 뭐 태어났을 때는 다 남자야. 우리들은 여장을 하는게 직업이고 또 배우면서 다른 사람을 웃기긱도 하고 가수고 댄서이기도 해. 어른들 중에는 눈살 찌푸리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이게 내 직업이야.”
-”멋있어요.”
“고마워. 근데 너 지금 우는거니?”
-”...언니,...그 거 나도 할 수 있을까요?”
“힘들거야. 지수야, 나도 지금 괜히 너 들뜨게 한 것 같아 미안해진다.”
-”저… 보기엔 연약해도... 속은 좀 독한 애에요. 그리고 지금 유일하게 하고 싶은게 생겼어요.”
“내가 너 지금 데려가서 이 일 소개시켜 줄 수 있어. 그런데 딱 거기까지야 그 자리에 서면 너 혼자야.”
-”지금 짐 쌀게요.”
“... 알았어. 지금 운전하는 친구한테 연락할게.”
그녀는 아까의 쭈뼛거리기만 하던 지수가 약간의 언질을 덥썩 물어버리자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뿌듯하기도 했다. 그래도 아직 어린애를 이 끝도 없이 거칠고 외로운 길로 끌어들인 것 같아 쓰게 웃었다.
그렇게 지수는 제이스와 그녀의 동료 퀸들과 합류하게 되었다. 며칠간 그들과 생활하며 지수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행복했고 서서히 그들의 일을 배워갔다. 사실 지수가 생각해온 여장은 방송에서 개그 소재로 쓰거나 은밀하게 하는 변태적인 취미일 뿐이었는데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그들은 화장을 하고 의상을 입을 때 마치 자신에게 또 다른 인격을 더했다. 단순히 예쁘거나 또 무조건 여성성을 지향하기 보다는 새로운 인물을 만드는 것 이었다. 처음에는 지수는 뒤에서 의상을 수선하거나 그들의 쇼를 보기만 하였다. 그들은 사람들을 대할 줄 알았다. 그들이 춤추고 말을 하는 것을 본다면 너무 대단해서 관객들이 던져주고나 쥐어주는 지폐 몇장 이상의 갚어치를 하였다. 그들은 서로 언니라고 부르면서 가끔은 질투도 미움도 있었지만 대부분 끈끈한 연대를 가지고 서로 격려했다. 언니들은 지수에게 화장이나 쇼에 대해 가르쳐주기도 하였지만 무대 만은 아직 절대 못 서게 하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수가 아직 미성년자라는 거 하나였다. 물론 그럼 쇼를 보는 것 자체가 안되긴 하지만, 아마도 지수에게 마음이 바뀔 여지를 주기위한 것도 있었다. 마침내 지수의 열아홉번째 생일날 지수는 드랙퀸으로써 첫번째 무대에 서게 되었다.
“잠깐… 언니들 거시기는 어떻게 감춘거야?”
-”일단 거기 있는 털 다 밀어. 초보들은 테이핑으로 하는데 털이 한가닥이라도 남아있으면 땔 때 무지 고생한다. 그리고 여기서 이런 걸 턱 이라고 하는데 그냥 가랑이 사이로 묻고 테이프로 압박한다고 생각해.”
“...안 아파요? 중간에 서면 어떡해요?”
-”음, 가라앉혀야지 다른 생각하면서.”
“...”
-”지수야, 누구에게나 첫 드랙이 있고 완벽할 필요는 없어. 천천히 준비해. 기다려줄게.”
지수는 칠년 전 그 날의 떨림을 떠올렸다. 역시 이번에도 손이 흥분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그 손에 힘을 꼭 쥐고 지수는 마저 코르셋을 꽉 조였다. 가발을 마지막으로 한번더 손 보고 지수는 무대 바로 밑 계단에서 심호흡을 하였다. 정말 소름끼칠 정도로 그 날과 같은 기분 이었다. 숨을 고르며 무대로 통하는 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저 문 만 열리면… 문이 열리면? 그 때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뭐였지? 당시 검은 악몽이 지수의 마음을 잠식시켜 왔다. 더 이상 설렘으로 심장이 두근거리지를 않고 대신 두려움에 미친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난 못해.’
무대를 통하는 문이 열리고 밝은 불빛이 환하게 백스테이지로 들어오는 순간 지수는 자신의 손을 잡아주던 제이스의 손을 뿌리치고 황급히 작은 간이 화장실로 도망쳐 나왔다. 지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더러운 거울을 통해 제 자신을 바라봤다. 몇년 전과 다름 없이 깡마른 애, 아시아계 특유의 평평한 얼굴에 톡 튀어나온 광대 다른 퀸들과 다름 없는 화장. 눈물로 얼룩진 눈가.
‘좆 같다.’
속이 끓오르고 구역질이 올라와 지수는 변기 커버를 황급히 움켜쥐었다. 빈 속에 올라오는 것은 쓰라린 쓴 물 밖에 없었다. 그럴 줄 알면서 지수는 자신이 한심하면서도 안쓰러워 미칠 것 같아 계속 헛구역질을 해댔다. 다른 언니들은 몇 시간 뒤에 올 것이다. 그들은 돌아와서 위로를 해주겠지만 속으로는 분명히 실망했을 꺼야. 지수는 울었다. 오랜만에 바닥에 주저앉아 열두살 아이처럼 소리내어 울었다.
다행히 그 날 이 후에는 지수는 무대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소심한 태도와 표정에 딱히 그 어떤 호응도 수입도 벌지 못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해 버렸다. 여전히 허드렛일을 자처했고 착실히 수행했지만 지수는 점점 우울해졌고 다른 퀸들은 지수를 챙겨줄 여력이 없었다. 제이스만이 지수를 끌어들인 대에 죄책감을 느끼고 감싸줬다. 서서히 모두가 지수에게 지쳐갈 때 쯤 지훈이 나타났다.
그 때도 여느 때 처럼 지수는 무대에서 내려와 어디 구석에서 힐 위에서 고생한 발바닥을 주무르고 있던 중이었다.
“지수야 이 분이 너랑 얘기 좀 하고 싶데.”
지수가 처음 본 그는 키도 작고 외모도 어려보이는 자기와 같은 동양인 남자 애, 그랬다 정말 ‘애’인줄 알았다. 지수는 그를 따라 밖으로 나오며 제이스에게 귓속말로
“저번처럼 아는 사람 이랑 닮았다고 어디 집안 사람 아니냐고 묻는 거면 그냥 들어올테니까 예의 없다고 욕하지마.”
당시 공연장이 워낙 외진 곳에 있다보니 딱히 어디 앉아 얘기할 마땅한 장소가 없어 찾은 곳이 지수가 일했던 곳과 비슷한 외진 식당이었다. 지수가 먼저 자리를 잡고 그 남자를 따라 그 맞은편에 앉아 악수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남자가 외국어로 말을 걸어왔다.
-”저 일본사람 아니예요. 입양되어서 영어 말고는 다른 말 몰라요.”
“이름 보니까 한국계 같은데, 제 소개를 먼저 할게요. 베가스에서 온 이지훈 입니다.”
지훈은 그 쪽 세계에서 나름 잘 알아주는 뭐 소위 말하는 매니저였다. 어린 드랙퀸들 중에서 그의 마음에 들었다거나 아니면 정당한 액수를 지불받았거나 한다면 그는 그들을 훨씬 더 완성된 모습으로 무대에 올려놨다. 지수도 지훈과 같은 사람들을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수는 사람 자체를 믿지를 않기에 선뜻 지훈이 내민 손을 잡지 못했다.
망설이는 지수에 지훈은 웃으면서 말했다.
-"강요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저 이번에 가면 다시는 안 올거에요. 그 어린 나이에 아무 이유도 없이 드랙 시작한건 아닐테고, 딱 거기까지 갈꺼였나봐요."
지수는 정곡을 찔려 움찔하고도 그동안 쌓아논 서운함이 미친듯이 몰려왔다. 그래도 오늘 처음 본 남자 앞에서 꼴사납게 질질 짜기는 싫었다.
"...따라 갈게요."
-"고마워요. 정리하고 짐 싸서 나와요."
지수는 지훈과 그 날이후 몇주 동안 여행만 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른 드랙 퀸들의 공연도 보게 되었다. 지훈이 가장 그 때 동안 도와준 부분은 지수의 캐릭터를 찾는 것 이었다.
-"지수씨는 외적으로 좋은 조건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그건 그렇게 중요한 부분이 못되요."
"이쁘다는 말 되게 어렵게 한다."
지수는 며칠간 같이 다니며 서로 좀 친해진 것도 같은데 아직 존칭을 쓰는 지훈을 놀렸다. 지훈은 못 들은 척 말을 이어갔다.
-"뚱뚱하거나 못생겨도 사랑 받는 퀸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은 자기 만의 캐릭터, 유머, 브랜드가 있어서 무대에서 그 에너지를 낼 수 있는거야."
"그 쪽 생긴건 귀여운데 말 진짜 재미없게해요. 그거 알아요?"
-"지수씨 말투는 그 삼류 공연 백스테이지에서 배운 거죠?"
지훈은 예의있게 입을 닥치라고 말하는 재주가 있었다. 지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뾰루퉁하게 지훈의 말을 마저 들었다.
-"어떤 퀸들은 포르노 스타를 자기 캐릭터로 어떤 퀸들은 미망인, 유부녀 심지어 고어나 판타지를 캐릭터로 잡기도 해요. 지수 씨도 한번 생각해봐요."
"도대체 감을 못 잡겠는데..."
-"일단 드랙네임부터 생각해봐요. 언제까지 조슈아나 지수란 이름 쓸 수 없잖아요."
"그냥 지수라는 이름 계속 쓰고 싶은데. 어차피 그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 지금은 너밖에 없어."
-"그럼 홍지수 어때요."
"뭔데 그게."
-"한국에서는 성을 앞에다 붙여도 뭐 거슬리면 뒤에다 붙여도 상관없고. 그냥 붉은 색이라는 뜻인데 약간 게이샤 느낌도 나고 지수씨한테 잘 어울려서요."
"뭐, 네가 괜찮다면 좋은 거 겠죠."
-"한번 아까 말한거 생각해봐요. 너무 쫒기진 말고 다 지수씨 위한 거니까."
지훈이 나가고 지수는 생각했다. 정말 오랜만에 자기 자신에 관해서. 촌에서 큰 입양아. 소녀이고 싶었던 소년. 항상 주변에 꼬였던 거지 같은 인간들. 착하고 순수한 아이. 촌스럽고 바보같고 예쁘고. 발랄하면서 우울한. 지수는 고개를 들어 자기 앞에 거울을 봤다. 먹는 음식이 좋아진건지 조금 밝아진 얼굴 빛, 그 외에는 처음 무대에 설때와 별 변한게 없는 얼굴. 지훈이 예쁘다고 칭찬한 얼굴. 갑자기 지수는 가슴 속에 차오르는 따뜻함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수는 지훈이 고마웠다. 그리고 정말 좋았다. 지수는 지훈이 머무는 여관방으로 갔다. 지훈은 평소같이 소파에 길게 기대 앉아 지수가 읽어도 모를 제목의 책을 일고 있었다. 지수는 그의 뒤로 다가가 작은 키에 비해 좁지 않은 그 든든한 어깨를 두팔로 꼬옥 끌어 안았다. 양어머니 말고 다른 사람에게 처음으로 마음이 놓인다는 감정을 느꼈다.
-"뭐..뭐야."
"어? 이젠 존댓말 안하네?"
지훈이 뒤를 돌아 지수를 보았다. 너무 가까웠다. 눈가에 차오른 눈물에 비친 자신의 당황한 얼굴이 보일 정도로.
-"울어요?"
"이제 좀 편하게 대해줘라 좀."
지수가 칭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지훈에게 안겼다. 지훈은 그렇게 불편한 자세로 한참을 있었던 것 같다.
특유의 큐트한 외모와 어린 나이 그리고 조금의 백치미 그렇지만 적극적인 그러면서도 깊은 곳에 사연이 있어보이는, 하여튼 그 특이한 캐릭터로 지수는 조금씩 성장했다. 지훈을 만난 이후로 무대에 다시 선적은 없지만 그에 대한 두려움은 하나도 없었다. 지훈은 지수의 비약적인 발전에 놀라며 지수를 위한 최적의 무대를 만들려 물색 중 이었다.
-"준비됐어?"
지수는 대답 없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단 표정으로 갸우뚱 거렸다.
"지훈아 나 뒤에서 코르셋 좀만 더 땡겨줘."
-"아냐 지금 충분히 여성스러워. 더하면 못 움직인다?"
지금 지수는 여태껏 입어본 옷 중 가장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처음 써보는 인모 가발도 정성껏 빗질하였다. 확실히 처음 무대에 섰을 때보다 비싸보이고 자신감도 있어보였다.
"지훈아 내가 뭐 필요한지 알았어. 목걸이만 있으면 완벽한데... 좀 과할정도로 반짝거리는 놈으로."
-"내가 갖고 있는거는 다 별로야?"
"응."
-"지금 나가서 찾아볼까?"
"내가?"
-"그럼 내가 너 차로 오늘 가는 호텔 뒷문에 내려줄게 거기서 기다려."
"알았어."
지수는 가끔 신기할 정도로 자신에게 헌신적인 지훈에 속으로 우리 둘이 비즈니스 만으로 엮인 사이는 아닐꺼라며 확신했다.
지수가 대기실로 들어서자 분주히 움직이는 스태프들 사이로 진한 며칠동안 무대 밑에서 지수가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퀸들이 지수를 맞았다.
-"어디서 못보던 이쁜 년이 왔네?"
어딘가에서 반기는 투는 확실히 아닌 말이 날아왔다. 지수는 조금 움추러드는 기분이었다.그래도 어렵게 서게된 무대를 포기하긴 싫었다. 지수는 입을 풀고 머릿속 생각해둔 동선과 자신의 캐릭터를 계속 그렸다. 하얗게 빛나는 배경이 쏟아지고 지수는 그 무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선에 그녀에게 쏟아졌다. 지수의 심장이 빠르게 요동쳤다. 그 떨림은 기분 좋은 떨림이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신게된 힐이 적응되지 않은 탓에 지수는 그만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 짧은 순간 오만가지 것들이 다 지나갔다. 아니다. 여기서 끝내기 나는 너무 어리고 지금 내 완벽한 모습이 아까웠다. 지수는 넘어진채로 다리를 고쳐 앉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밝은 모습으로 웃으며 고개를 들고 손을 흔들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당황하지 않은 그 모습에 사람들은 격려와 환호를 보내었다.
"오늘 눈이 와서 길이 좀 미끄러웠죠? 여기도 그러네요."
사람들이 웃었다. 지수는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이윽고 스태프 둘이 지수를 부축하러 왔고 지수는 그들의 도움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뛰어난 실루엣을 자랑했다. 지수는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지수는 무대에서 뛰어오다 싶히 내려왔고 그 밑에서 기다리던 지훈에게 포옥 안겼다.
"지훈아, 봤지? 나 넘어졌는데 바로 뻔뻔하게 일어난거. 나 진짜 타고났나봐. 이런 쇼비즈니스 안했으면 아까워서 큰일날 뻔했어."
-"넌 이제 겸손이라는 걸 배워야될 것같아."
지수가 무대에서 내려온 후 그 둘은 소소하게 축하할겸 와인 몇병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안그래도 들뜬 지수는 그 몇잔에 볼까지 발그레하게 달아올라 신나게 떠들어댔다. 그러다 지훈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 허리에 손을 감고 품에 쏙 들어갔다.
"지훈이 여자 좋아하지? 그거 아니면 나 같은 애가 이러는 데 어떻게 가만히 냅둬."
-"..."
"점잔도 적당히 부려. 나 매일 자기전에 문 열어놔."
-"화장 지우고 자. 피부 망가져."
"아, 진짜 이러기야?"
-"나 몇대만 태우고 올게. 너 냄새 싫어하니까, 먼저 자."
지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수는 지훈이 너무 쑥맥이라서 그런다고 생각했다. 이런 지훈에게 들이대는 자기가 이상한 거라고.
그렇게 잠이든 지수는 얼마 후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눈을 떴다.
"지훈?"
깜깜한 어둠 속에서 따뜻한 숨이 지수의 목덜미에 닿았다. 지수는 답답함에 불을 키려 전등을 더듬었지만 지훈의 손이 단호하게 막았다.
-"너 원하는데로 해줄게 대신에 너 딴놈이었으면 나만큼 안 참는거 알지? 너 이 바닥에 몇년만 더 있으면 별의별 것들이 다 꼬이거든..."
지수는 귓가에 들어오는 평소보다 낮은 그 목소리가 낯설어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런 백지 같은 애를 내가 어떻게 혼자 냅둬."
그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있었다. 어둠에 적응된 눈은 지훈을 본 이래 처음으로 본는 그 무너지려는 표정을 비췄다. 지수는 그 표정이 싫어 자신의 두손으로 감싸 눈을 감고 입을 맞췄다. 그와 동시에 침대에 비스듬히 걸터 앉아있었던 지훈이 완전히 지수 위로 올라탔다. 항상 작게만 보였던 그 덩치가 묵직하게 눌러왔다. 다시 한번 뜨거운 숨이 지수의 목덜미를 덮쳤고 그에 반대로 차가운 손은 헐렁한 티셔츠 밑으로 파고들어 지수의 가는 허리를 잡아왔다. 그에 놀라 지수가 움찔하자 목덜미를 할짝 거리던 지훈이 고개를 들고 지수이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말했다.
-"싫어? 설마? 아까 그런건 내가 만만해서 그런거야?"
"아냐.계속 해."
그 대답과 함께 지훈은 머리를 아예 지수의 옷 안으로 들이밀어 판판한 가슴을 핥기 시작했다. 운동 자체를 워낙 싫어해 정말 말랑말랑하게 살만 잡히는 그 가슴은 옆구리부터 끌어올려 모아 주물러도 한줌도 되지 않았다.
"뭐야, 이상해 흐으."
지훈은 그 칭얼거림을 한번 듣고 피식 웃은 후 살짝 단단해진 가운데 돌기를 입에 담았다. 간지러운 느낌에 지수가 앙탈을 부리며 푸흣 웃자 지훈은 힘을 조금 주어 앞니로 살짝 물기도 하고 반대쪽을 꼬집기도 했다. 그럴때 마다 지수는 읏하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남의 손을 타지 않은 몸은 새로운 반응에 솔직했다.
-"야, 못참겠다. 밑에 벗어."
지훈이 지수에게서 떨어지자 처음에 지수는 멍청한 표현으로 가만히 있다가 느릿느릿 입고 있던 반바지와 속옷을 천천히 내릴동안 지훈은 마른세수를 하며 속으로는 생각보다 많이 처녀인 지수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침대에서 내려와 방의 스위치를 켰다. 갑자기 밝아진 시야에 지수는 눈을 찌뿌리다가도 자신의 헐벗은 하체가 새삼스레 부끄러워 괜히 몸을 베베 꼬았다.
-"아까 무대에서는 그 짧은 치마 입고도 잘 돌아다니드만 왜 그래."
"... 몰라요, 빨리 해."
-"뭘 할줄 알고."
지훈은 거침없이 침대에 올라와 두 발복을 잡아 벌린 후 지수의 페니스를 물었다. 자신의 중심을 자극하는 뜨겁고 축축한 그 생소함에 지수의 두 손은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츄읍 촙. 외설스러운 소리가 방안을 울렸고 지수는 그 자극에 지훈의 등을 발꿈치로 꾸욱 눌러대었다.
-"왜, 그리 보채. 빨리 해달라고?"
지훈은 지수의 것을 입에서 빼낸 뒤 손으로 자극하며 다시 고개를 밖고 둔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흐으 읏! 아까보다 한톤 높은 신음이 빠져나왔다.
"흐으 이거 이상해..."
-"뭐야 이제 와서 내숭떠는거야."
"얼굴 보여줘 지훈아."
지수가 앙탈을 부리자 지훈은 기꺼이 입을 떼고 지수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지수는 그에 응하듯 팔을 그 목에 감고 이미 맞붙었음에도 더 가까워 지려는 듯 그 뒷머리를 끌어안으며 입을 맞춰갔다.
-"하아, 이렇게 좋은 걸 이제까지."
"계속.계속 해줘, 멈추지 마. 응?"
지훈은 두 손으로 지수의 얼굴을 잡고 눈을 맞췄다. 까맣고 깊은 아직까지도 순진하면서도 모르겠는 그 눈이 맺힌 눈물로 반짝 거렸다.
-"약속해. 나랑. 딴놈이랑 이 짓 안하겠다고."
"알았어. 알았으니까 빨리."
-"내 눈 똑바로 보고 말해."
지수는 그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지훈을 빤히 올려다보고 그 얄쌍한 허벅지를 아까부터 성난 지훈의 중심에 닿게 하며 대답했다.
"약속할게."
지훈은 아까부터 참느냐 터질 듯 하게 부풀어 오른 성기를 바지속에서 꺼냈다. 이를 본 지수의 숨이 멎었다. 정말 이런 행동 하나하나까지 지수는 본인이 알던 모르던 보는 사람을 미치게 하였다.
-"나 원래 이렇게 급하게 안하거든? 그런데 너는 후우. 참지를 못하겠다."
"후으, 흐, 응!"
"지수야."
아까보다도 더 낮아진 목소리로 지훈이 속삭였다. 굵은 이물질이 들어옴과 동시에 지수는 숨이 턱 막히는 듯하였다. 혹시나 했는데 처녀 맞구나. 지훈은 생각했다. 그 놀람과 새침함이 섞인 표정이 꽤나 볼만했다.지수는 본능적으로 눈압에 보이는 지훈의 어깨에 이를 박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허리가 아작날 것 같았다.
-"이런 걸로 사람 안죽으니까 힘 빼자."
"뭘라, 아읍,으, 아파!'
지수는 반쯤 정신을 놓고 고개를 저었다. 지훈은 지수의 머리를 편하게 침대에 누이고 자신의 손가락을 하나 물렸다. 첫경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지수의 눈에 고인 눈물 한방울이 얼굴선을 타고 흘렀다. 후, 진짜. 지훈은 그 눈가에 입을 촉 맞추고 슬슬 추삽질을 시작했다.
-"지수야, 네가 시작한거야."
지수는 다시 한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훈은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며 옷깃에 떨어진 빗방울을 털며 물끄러미 지수를 쳐다보았다. 누가 봐도 감탄할 예쁜 얼굴에 얄쌍한 몸매 물론 지금 가슴이랑 엉덩이는 라텍스지만...
-"지수, 너 정말로 나 말고 딴 사람이랑 섹스한적 없어?"
지수는 뭔 쌩뚱맞은 소리냐는 표정으로 돌아봤다.
-"너 처녀 땠을때, 그 때 내가 너만 매니징 해주는 조건으로 너도 딴 놈들이랑 안하기로 한거잖아."
"아, 그거. 글쎄, 내 기억으로는 없는데."
지훈은 슬쩍 웃었다. 사실 지금 지수가 가진 명성에 이런 면을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몸 함부로 굴리지는 않는다는 걸 증명했다. 그리고 지훈은 그런 애인이 사랑스러웠다.
"지훈아 나 그때 생각하니까 흥분돼. 올라가서 그냥 바로 누우면 안돼? 안씻어도 상관 없는데."
물론 지훈에게는 한없이 헤프게 변하긴 했지만 그 점도 싫지는 않았다.
지수는 집밖에서 말한대로 집에 들어서자마자 지훈에게 매달려 입을 맞춰왔다. 지수의 뾰족한 혀는 지훈의 입천장을 훑다가 혀를 옭아매다가 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지훈은 조금 힘을 줘 지수를 떼어냈다. 둘 사이에 작은 은색 실이 생기자 지수는 다급하게 무릎을 살짝 굽혀 씁하고 그 실을 핥아올려 삼켰다.
-"네가 오늘 아주 작정을 했구나."
"알면 잘 해, 오랜만이잖아."
지수는 생긋 웃으며 방안으로 걸어 갔다.
"누워."
지수가 손가락으로 지훈의 넥타이를 집어 올리듯 그를 침대 쪽으로 몰았다.
-"드랙한 상태로 할꺼야? 안 불편하겠어?"
"나중에 봐서."
지훈이 침대에 걸터 앉자 지수는 곧바로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손은 망설임 없이 벨트를 끌르고 지퍼를 내린 후 드러난 드로즈에 촉하고 짧게 입을 맞췄다. 길게 내려진 옅은 갈색의 가발이 거슬리는 듯 대중 정리해 한손에 쥐고 지훈의 허벅지에 뺨을 대었다.
"머리 좀 잡아줘."
지훈은 홀린 듯 지수의 손에서 그 긴 머리카락 들을 옮겨 받고 실제 머리카락인양 거머잡았다. 지수는 자유로워진 손으로 드로즈를 내리고 외형을 갖춰가는 성기를 꺼냈다.
"볼때마다 신기해. 키는 나보다 작은데.."
-"그래서 싫어? 입에 넣기 부담스러워서?"
"에이. 그정도는 아니다."
지수는 장난끼 넘치게 웃다가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성기를 잡고 움직였다. 빽빽한 가짜 속눈썹이 팔랑거릴 때마다 지훈은 지수의 눈동자가 떨린다는 걸 알았다. 눈을 꼭 감은 채로 지수는 몸을 조금 일으켜 성난 페니스를 입에 천천히 들이밀었다. 지수의 머리카락 아니 가발을 쥔 지훈의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쫍, 쪼옵, 땡기디마 아퍼."
입안 가득 자신의 것을 문 챌 웅얼거리며 뱉어지는 발음에 미칠것 같아 오히려 머리채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지수의 입에 먹힌 자신의 것을 보다. 목구멍에 추삽질하기 시작했다.
"욱, 야, 목아파"
-"후으, 이세우지마."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는 것에 헛구역질을 하던 지수는 결국 이를 뱉어냈다.
"아프다고 했잖아."
-"미안해. 저기 엎드려봐. 옳지 헤드 잡고. 턱한거 풀어줄게."
지수가 침대로 기어올라 뒤를 보이자. 지훈은 지수가 입고 있던 검은색 드레스의 밑단을 허릿께로 말아 올리고 타이트한 속옷역시 살살 내렸다. 그리고는 남성기를 숨기기 위해 잔뜩 감아놓은 테이프를 살살 떼어내었다.
"지훈아, 오늘 수고한 내꺼한테 미안하다고 좀 만져줘."
지훈은 지수의 어깨에 턱을 괴고 지수의 성기를 살살 쓸어주었다. 하아. 더운숨이 뱉어졌다. 지수는 자신의 한 손을 먼저 가랑이 사이로 집어넣어 살살 둔부를 자극했다. 교차된 팔목이 닿는 것도 신선한 자극이 되어 다가왔다. 좀처럼 진도가 나가질 못하는 뻑뻑한 뒤에 지수는 자신의 손가락을 다시 입으로 가져가 혀를 내어 핥았다. 그 모습에 지훈은 지수의 허리를 안으며 뒷목에다가 이를 박았다. 한참을 손가락을 들이빨다 어느 정도 축축해지자 다시 중심으로 가져가 처음엔 소심하게 한두마디 정도만 찔러넣어 서서히 넓혀갔다. 그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자니 지훈은 뒷목에 솜털 마저 쭈뼛서는 기분이었다.
"으응. 몰라 이정도면 되겠지."
지수는 손을 빼내고 더듬더듬 지훈의 허벅지를 당겼다. 지훈은 기다렸다는듯 지수의 허리를 한팔로 안고 천천히 제 성기를 들이밀었다. 굵기부터, 온도부터 다른 무게감에 지수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으윽, 응"
-"아,지수야, 후우."
"아아, 으.."
바짝 다가 앉은 지훈은 입맛을 다실 수 밖에 없었다. 허벅지에 말캉하게 달라붙는 지수의 둔부나 살짝 뒤돌아 노려보는 듯한 눈빛이나 온통 다 자극적이었다. 처음에는 천천히 왕복운동을 시작하다 빨라지는 리듬감에 지수의 신음소리가 높아져가는 것을 느끼며 제 몸에 맞춰 흔들리는 등을 손으로 한 번 훑어 내렸다. 그 것 조차도 자극이었는지 뒤로 꺾이는 고개가 사랑스러워서 혀로 바싹 마른 입을 축여야했다. 핏줄이 붉어진 지훈의 손이 지수의 골반을 단단히 부여잡았다.
"윽! 응, 윽"
-"후, 좋아."
"하,아으, 읍"
모든 것이 다 선정적이었다. 살이 밀리는 토실한 엉덩이도 간헐적으로 떨리는 어깨도 하나같이 지훈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미쳐 떨어지지 못한 땀이 턱 끝에 맺혔다. 꽤나 넓은 방임에도 공기가 습하게 덥혀진 것 같았다. 일부러 손톱을 살짝 세워 지수의 뒷목을 힘을 빼고 그러쥐자 긴장감에 내부가 밀하게 조여오는 것이 느껴졌다. 크윽. 지수의 안을 파고든 제 성기에 형용할 수 없는 자극이 전해졌다.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 하나가 끊어진 것처럼, 지훈은 조금 난폭하게 지수를 몰아붙였다. 아윽! 아까 까지만 해도 도도하게 굴던 그 드랙퀸 홍지수가 자기 밑에서 허리를 흔들며 울어재끼는 까닭에 지훈은 모든걸 다 밀어 넣을 기세로 거칠게 허리를 쳐 올렸다. 난잡하게 안을 헤집는 지훈의 것은 바짝 커져있어서, 아릿한 통증을 느낀 지수가 저도 모르게 팔을 들어올려 지훈의 어깨를 안았다. 불편하게 몸이 틀어졌지만 공연으로 달련된 유연함에 둘은 입까지 맞출 수가 있었다. 지수가 먼저 입을 떼면서 흣!하는 높은 신음과 함께 사정했고 지훈 역시 몇번 강하게 위로 쳐올린후 지수의 안에 파정했다. 지수는 바로 옆으로 무너져 침대에 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숨이 들어오고 나올때 마다 아직 드레스와 가짜 젖이 입혀진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 하였다. 지훈은 그옆에 따라 누워 어지럽게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지훈아,나 신기하지."
-"뭐가."
"아무것도 할줄 모르던 집 나온 입양아가 사람 하나 잘 만났다고 이렇게 까지 올라온거."
-"내가 얘기했잖아. 너 타고났다고."
"맞아. 나 타고났어.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꼴리는지 알고 어떻게 해야 좋아해주는지도 알아. 그리고 너무 물렁해 빠지지도 않았어. 그런데 가장 큰게 뭔 줄알아?"
지수는 몸을 틀어 엎드려 누워 지훈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그 작고도 깊은 눈가를 매만졌다.
"난 진짜 착한 애 맞거든. 그렇게 못되게 대한 양누나 죽인거 나 아닌데... 다른 사람들이 나라고 하지도 않고. 솔직히 원래 성격이 그런거면 나 말고도 맺힌 사람 많겠지... 내가 왜 우울해 보였는지 알아?"
-"..."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그 누나였거든. 몰라 나도 왜 그랬는지. 그냥 항상 괴롭혀지는 입장에서 괴롭히는 쪽이 자신감 있어보이고 당당해보였어. 그런데 그게 항상 힘들었어. 곧 누군가가 내 음시에도 면도칼을 숨겨놓을 것 같았거든."
"그런데 그 내가 만든 굴레에서 날 꺼내준게 너야."
지수의 눈가가 다시 촉촉해졌다.
-"지수야 너는 진짜 착한 애 맞아. 그리고 그걸 무기로 사용할 줄도 알아야지. 아쉽잖아 태어나서 네가 가진거 못 보여주고 죽으면. 기왕 그렇게 태어난거 보람있게 살아야지."
"고마워 정말, 빈말 아냐.."
지수는 싱긋 웃었다. 광대에 밀린 눈가에서 눈물이 똑 떨어졌다. 지훈이 두 팔을 벌렸다. 지수는 작은 짐승처럼 그 안에 쏙들어가 안겨 얼굴을 부볐다.
"어 화장 묻었다."
-"괜찮아. 더 묻혀도 돼. 너가 어디서 구르고 시달려서 먼지투성이가 되어도, 나한테 와서 닦아내고 가. 그게 내 역할 이야."
지수는 그를 더 꽉 끌어안았다.
"어디 가지말고 제발 항상 내 옆에 있어줘."
-"알았어. 마지막 무대에서까지 밑에서 기다릴게. 끝나면 처음처럼 안아주러.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