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님, 손님 오셨어요."
정한과 그 날 밤이후로도 다른 사람들의 대우는 변하것이 없기에 내 일상은 그대로 였다. 그저 어떤 날은 하루 끝에 다시금 그 방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두리번 거리면서도 사제복의 옷깃을 꼭 쥐고 그 방에 들어섰다. 설명할 수 없는 마음 속 무거움이 한 쪽에서는 쌓여 가면서도 내가 사람임을 느끼게 해주는 정한에 고마웠다. 그리고 그가 찾아왔다. 아버지가 보낸.
"안녕하세요, 북쪽 사단 사령관 전원우입니다."
차갑고 뾰족해보이는 인사 예의 사람을 대할 때 빈틈이 없으면서도 이질적인 태도, 이 것이 아마 아버지가 내게 원한 모습이겠지. 나는 그가 내민 손을 물끄러미 보다가 꾸벅, 목례로 짧게 답을 대신했다. 자리를 옮겨 둘만 남게 되자마자 그는 입을 열었다.
"부친상 이후로는 좀 어떠신지요. 유서도 없이 떠나신지라 조금 당황하셨겠지요.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저에게 모든 말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저를 찾지 않으신게 불안해서 이렇게 직접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지수는 그의 어깨 너머를 멍하게 바라보며서도 그의 말을 따라가려 애썼다.
"장군께서 남기신 말을 정리하면 두가지 입니다. 자신의 아들, 당신,을 돌봐주고 지켜달라. 그리고 그의 자리는 저에게 넘겨주신다고 하셨더군요. 다만 당신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지수씨가 이 곳에서 저의 즉위를 인정하는 선언을 해준다면 저는 그에 따라 지금 임의로 자리에 앉은 전직 대령을 내리고 제가 이 곳을 통제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수씨를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평생, 제가 죽을 때가지, 보호해드리죠."
-"그래요. 선언은 어떻게 하죠?"
생각보다 빠른 지수의 결정에 원우는 눈썹을 한번 으쓱하고 흰색 잉크로 글자가 씌여진 검은 종이를 꺼내었다. 그 곳에는 지수의 아버지의 도장과 함께 전원우라는 이 사람을 자신의 자리에 앉힌다는 내용과 그 밑에는 지수 역시 이에 동의한다는 문단과 작은 빈공간이 있었다.
-"그럼 내일 아침 이거 그대로 읽으면 되죠?"
"예, 빈공간에는 검지로 지장 남기시면됩니다."
지수에게 이 것이 나름 전환점이라면 전환점 이었다. 아버지의 빈공간을 대신해줄 사람이 생겼으니 어쩌면 그 때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정한은 애꿎은 것만 물어왔다.
"전원우 사령, 그 인간 좀 많이 젊지 않아?"
-"그런가요?"
"보면 몰라요? 어때, 생긴 것도 좀 생겼지."
-"무슨 말을 하시는지, 왜 그런 말을 하시는지요."
정한은 대답에 눈을 굴리며 앉아있던 욕조에 얼굴을 푹 담갔다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아까와는 다르게 환하게 웃으며 지수의 팔을 잡아왔다. 젖은 손이 팔에 감기자 지수의 무덤덤한 표정이 조금씩 흔들렸다. 정한은 그 흐트러지는 눈빛을 즐겼다.
"옆에 들어와요."
바스락거리며 무거운 사제복을 벗어낸 지수는 조심스레 물이 참방거리지 않게 정한의 옆에 자리했다. 정한은 그런 지수를 뒤에서 끌어안고 그 가녀린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오소소 돋는 소름에 지수는 욕조 끝을 꼬옥 잡았다.
"그 사람이 너 지켜줄 것 같으면 너 할려는 대로 해. 그 사람이 너의 아버지 빈자리 채워줄 것 같으면... 나는 다른 자리에 있잖아... 그지?"
그 말을 끝으로 정한은 여전히 지수의 허리를 안은 채 지수의 턱을 돌려 입을 맞췄다.
다음날 지수는 오랜만에 이 곳 사람들 앞에서 확성기를 잡았다. 그리고 그저 아버지가 나를 위해 써놓은 그 말들을 읽어내려갔다. 원우의 손에 아버지의 도장을 넘겨주고 그는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지금 보니까 아버지랑 눈빛이 많이 닯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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