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철 없던 고등학생이었다.
그 때까지는 남과 다르지 않게 평범하게 잘 살고 있었다. 적당히 학교에서 시키는 만큼 일하고 유명하지는 않아도 적은 수의 친구들과 잘 지내고. 친구들은 내 아직까지 조금 어눌한 한국어 발음으로 놀릴때 아니면 조금 이라도 내 기분을 건드리지도 않았다.
어느 날, 친구 녀석이 나는 잘 알지 못하는 누구의 집에서 술판을 벌이자는 얘기를 꺼냈다.
내가 싫어하는 것중에 하나가 친구가 다리에서 뛰어내린다고 같이 뛰어내리는 것이지만, 굳이 친구 때문이 아니라도 마음 속에 숨어있던 궁금증이 너무 컸다.
생각보다 재밌었다. 사람들 여럿이 긴장이 풀리고 다 같이 바보들 마냥 헤실거리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이 자리와는 어울리지 않은 얌전하게 생긴 선배 누나가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오길래 살짝 피해주었다. 그런데 자리가 목표가 아니었는지 계속 나에게 무어라 말을 거는 데 단어 몇개는 들리지만 내가 문장을 완성해서 말할 정신은 없어, 고개만 웃으면서 계속 가로저었다. 그 누나는 상관없이 역시 웃으면서 왜라고 물어왔고 나는 끝에는 옆에 앉은 친구 녀석 등뒤로 숨어버렸고 거기서 일이 끝날 줄 알았다.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은 쉽다. 그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는데 애를 먹을 뿐이지. 다음날 늦게 일어나서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생전 처음보는 숫자의 사람들에게서 각종 내가 알고 있는 인터넷으로 메세지를 받을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연락이 와있었다. 그리고 한두개를 열어보고 소리도 못지르고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동영상 하나가 있었다. 어제 그곳에서 누군가 문 틈으로 찍은 듯한 조용히 낮게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마구 흔들리던 화면이 고정되더니 나와 그 선배누나가 입을 맞추고 있었다. 배경으로 들리는 온갖 더러운 대화들, 그리고 누군가가 화면에 나타나 그 누나를 내게서 떼어내고 내 멱살을 끌고 집 밖으로 내쫒았다. 하필 그게 내가 그 곳에서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었던 친구 녀석이었고,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그 누나가 친누나라 하더라.
내가 항상 내 편일거라 자신했던 친구 녀석은 자신의 핏줄을 위해 나를 깎아내릴 판을 깔았다. 그리고 가십에 미친 것들이 그 판에서 나를 온갖 방법으로 물어뜯었다. 나는 그런 모두가 나를 공격하는 상황에서 내 자신을 위해 변호할 말을 할 용기조차 없었다. 아니다, 친구들한테 기억이 안난다고 솔직하게 항변을 했지만, 내가 듣기에도 그 것은 누구나 만들어내기 가장 쉬운 거짓말 같았다.
그렇게 일주일을 살다보니 사람이 무뎌지기도 무뎌지지만 무감각해지면서 모든 의욕을 상실하더라.
나도 모르게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몸을 기울여 뚝 떨어지고 싶고, 목욕을 할때면 하는 생각이 이 물이 얼마나 따뜻해야 내 피가 안 멈추고 계속 나올까 그런 것들 밖에 없었다. 그를 만난 날도 나도 모르게 상가 옥상으로 올라가 멍하니 난간에 걸터앉아 있었다. 달랑거리는 발끝을 쳐다보며 내가 얼마나 오래 떨어질까 따위의 상념에 사로잡혀 있을때, 내 두발 사이로 어떤 머리통이 나타났다. 눈부신 금발, 자기가 무슨 아이돌인가 생각도 잠시 그 머리가 획 돌아가 나를 곧바로 올려다 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놀라서 뒤로 자빠질 뻔했지만, 그 아이 표정이 괜찮다고, 여러가지로 이야기하고 있어서 아무말도 안하고 그저 멍하니 쳐다보았다.
-"여기서 떨어져도 안 죽어."
"응? 무슨 말이야, 내가 언제."
-"뭐, 엄청 다치기는 하겠는데 그럼 네가 아니라 네 부모님 고생이지 너는 편하게 병원에 누워있을 동안."
"..."
-"기다려봐, 내가 곧 올라갈께."
머리카락처럼 그 아이의 착상도 특이했다. 짙푸른 색의 상의와 빨갛고 하얀 스카프에 우리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정장바지, 누구나 봐도 우와 잘 차려입었네 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절대는 입지는 않을 그런 모습이다.
그 아이가 나를 측은하게 쳐다보았다.
-"이리와" 옥상 바닥에 철푸덕 앉은 그 아이가 나를 손짓하며 불렀다.
-"여기다 머리베고 누워." 자신의 무릎을 툭툭 친다.
분명 다 큰 남자애가 다른 애 무릎을 베고 눕는 다는게 여간 낯간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그 때 나는 많이 지쳤고 기댈 곳이 필요했나보다.
자연스레 위쪽을 보며 눕게 되었고, 유난히 맑은 하늘이 보였다.
최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있던가.
갑자기 눈 앞이 뿌얘지더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아이가 놀라서 물었다.
-"어! 뭐야, 울어?"
"아니야, 햇빛이.. 햇빛이 너무 밝아서, 흐아앙."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엉엉 울어버렸다.
그 아이가 괜찮다고 괜찮다고 어깨를 두드리는 손이 너무 다정해서, 오늘 처음 만났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하도 끅끅거린 탓에 그 애는 나를 일으켜 앉히고는 두 손을 가볍게 잡아주었다.
내가 어느 정도 진정하고, 숨을 천천히 들이마쉬자, 그 아이가 입을 뗐다.
-"이렇게 착한 앤데, 그걸 믿는 병신들이 참, 자꾸 그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말에 휘둘리지마.
어짜피 걔네는 너가 뭘해도 뭐라 그럴 사람들이니까, 어떻게든 다른 사람 물어뜯을 려고."
그 아이가 아직 빰에 흐르던 눈물을 닦아주었다.
-"내비둬. 어짜피 그렇게 살다가 죽을 사람들에게 무릎 꿇을 거야? 피곤하게 마음쓰지 말고, 좀 쉬어가. 흘려버리라고."
내가 미약하게 나마 웃어보이자, 그 아이는 두배로 웃어주었다.
-" 다 잘 될거야. 세상은 살만해. 계속 망가질 바에야 차라리 마음을 비워 이래도 저래도 결국 살아지니까."
오랜만에 따뜻해진 마음을 느끼기도 잠시, 갑자기 스치듯 지나가는 기억에 뒷목에 소름이 시큰하게 돋았다.
따뜻하게 잡아오던 손을 뿌리치고 지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건물 계단을 뛰어내려왔다.
그 곳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를 만큼 정신이 없었다.
지수는 미친듯이 떨리는 몸을 이끌고 어느 작은 납골함 안에 멈춰섰다.
다리에 저절로 힘이 풀리고 주저앉아 아까 다 울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것이 무색하게 계속 울었다.
지수 앞에 작은 사진 속 정한이 옥상에서의 아이와 똑 같은 미소로 웃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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