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지수님? 안에 계셔요?"
똑똑
슬슬 귀찮아지려고 한다. 전원우라는 인간에게 아버지의 도장을 넘겨준 것에 대해 아주 조금은 조금이나마 자신이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 시간이 늘어날 까 하는 작은 바람이 있었지만, 오히려 더 바빠진 것 같다. 지수의 아버지의 부재로 잠시나마 혼란스러웠던 이 곳은 전원우로 인해 조금씩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물론,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 역시 피곤해졌지만.
지수는 사실상 아무것도 해야할 것이 없었으나, 전원우는 지수를 자신이 가는 곳 마다 데려갔다. 데려가고 물어보지도 않은 것들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꼭 지수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 처럼. 그래서인지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아직도 자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 이른 아침에 깨는 것은 언제나 별로였다.
-"들어와요."
지수가 몇번 큼큼 목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고 그가 미미하게 웃는 얼굴로 들어왔다. 형식적인 웃음. 그가 혼자 있을 때는 항상 계산적인 차가운 표정이다. 그는 아직도 이불에 포옥 파묻혀있는 지수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작게 쉬었다.
"일어나셔야죠."
-"그럴꺼에요."
바로 맞받아치는 지수에 원우의 얼굴에 짜증이 확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코 끝에 확 와닿는 냄새에 눈까지 찌푸렸다.
"지수님, 설마 담배..."
설마 하는 마음에 차마 말을 잊지는 못하고 그저 지긋이 지수를 내려다보았다. 지수는 무어랑 하려는 듯 몇번 입을 뻐끔거리다,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항의하듯 이불을 개키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아니에요. 저 그런거 안 펴요. 그거 뭐냐, 기도해주는 거 하기전에 했던 서약이랑 그런 거 때문에 안 펴요."
"그러면 이건 무슨."
원우는 의심을 치우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지수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조심스럽게 긴 소매로 덮인 지수의 손목을 잡아 가까이 다가갔다. 오히려 옅어진 향에 이상하게 생각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지수의 눈은 갈 곳을 잃었다. 원우는 진하게 담배 향이 나는 지수의 목덜미로 가까이 다가갔다. 지수는 원우의 작게 떨리는 미간까지 느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서 오는 긴장감에 자신도 모르게 침대 시트를 말아 쥐었다. 원우는 그 때 지수의 목까지 덮은 얇은 천 사이로 이제는 자주색으로 변한 잇자국을 보고 말았다.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둘은 눈은 마주했지만 감히 누가 먼저 말을 끄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모든 상황을 파악했다. 먼저 정적을 깬 것은 원우였다.
"누구에요."
-"...말해야되요?"
원우는 뒤돌아 작게 중얼거렸다. "뭐? 서약 때문에 담배는 안 펴? 하, 진짜." 그리고는 손으로 머리를 싸맸다.
-"좀만 기다려요. 나 준비하고 같이 내려가서 얘기해요."
원우는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짧게 목례를 하고 방을 나섰다.
"뭡니까."
원우가 윤정한의 방에 들어섰을 때 정한은 예기치 못한 상급 장교의 등장에 조금 놀라는 듯 보였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옷매무새를 다듬기는 커녕 벌어진 셔츠의 단추를 채울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하였다. 두 사람 사이에 살벌한 냉기가 감돌았다. 그 분위기를 방 바로 앞에 숨어있던 지수도 느꼈는지 달달 떨었다.
"위법되는 물품을 소지하고 있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고 확인하려 왔습니다."
정한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자신의 책상 서랍을 가리켰다.
"저기 있는게 전붑니다."
원우가 책상 서랍을 열었을 때 아까의 긴장이 허무할 정도로 바로 윗 쪽에 남부 지역에서는 꽤나 흔하게 거래되는 독하기로 유명한 시가 상자가 바로 위쪽에 있었다. 그 것을 꺼내들고는 정한에게 보여주었다.
"이거는 저희가 지급하는게 아닌데 어째서?"
"제가 가져왔으니까요. 나 이쪽 사람 아니거든."
"저희 교단에서는 흡연은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지역 출신도 아니고, 당신네 종교 믿지도 않아요."
원우는 지수 이야기를 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면 일단 선도회에 당신을 넘기겠습니다. 그 곳에서 결정하겠지요."
"지수랑은 좀 친해졌어요?"
계속 머릿속을 맴돌던 이름이 정한의 입에서 나오자 조금 놀라는 원우였다.
"실례하지만 뭐라고,.."
"홍지수랑은 좀더 친해졌냐구요. 요즘 많이 끼고 다니더만, 워낙에 내성적이잖아요."
"많이 배워가는 단계입니다."
정한은 원우의 피상적인 대답에 코웃음을 쳤다.
"아니, 지수 상태 물어본게 아니라 서로 어떤지 물어본겁니다."
원우는 지긋이 정한을 쳐다보았다. 정한은 지지 않고 빙글거리는 입꼬리를 내리지도 않고 차갑게 굳어가는 원우의 얼굴을 마주했다. 원우는 대답 대신 등을 돌려 방을 나섰다. 문고리를 돌리던 찰나 원우는 정한을 뒤돌아보며 말했다.
"다음부터 다른 사람 앞에서 지수님 얘기할 때 존칭 꼭 붙히세요."
-"저기..."
걱정스러운 표정의 지수를 무시한 채 원우는 그를 이끌고 그의 사무실로 향했다. 잡힌 손목이 얼얼할 쯤 지수가 손을 비틀자, 걸음을 멈춘 원우는 지수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떨구어지는 그의 고개에 지수는 괜히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미안해요."
그 말에 다시 고개를 들고 여전히 앞만 바라보던 원우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저한테 미안해 하시지 말고... 당신 아버지 생각하세요. 오늘은 업무 안 따라오셔도 됩니다, 방에서 푹 쉬면서 생각할 시간 드릴게요."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에 툭하고 떨어진 기분이었다. 뿌얘지는 시야로 원우를 보내고 도망치듯 방으로 돌아온 지수는 오랜만에 베개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처음에는 어린 아이처럼 돌아오질 않을 아버지를 찾으면서 울었다. 그리고는 자신 주위에 돌아가는 자신은 하나도 모를 일들의 답답함에 뜨거운 가슴을 쥐어박으며 울었다. 나중에는 지쳐 울 기운도 없어 멍하니 천장의 문양을 세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벌써 창문을 통해서는 주황빛 노을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 햇살이 닿은 문틈 사이로 무언가 반짝였다. 축 늘어진 몸을 힘들게 일으킨 지수는 문틈 사이에 끼워둔 사진 하나를 발견하고 주워들었다.
'괜찮아요.' 깔끔한 원우의 글씨, 반대편은 오래된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는 건장한 체격의 두 군인이 화려한 제복을 입고 있었고, 그런 그들에게 매달린 두 아이가 있었다. 지수는 그 두명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계속 머릿속에 간직했지만 별로 기억이 나지는 않는 아버지의 웃는 얼굴, 그에게 매달려있는 어린 지수, 그리고 항상 차가운 표정의 그리고 그 사진 속에서도 굳은 표정의 아버지보다 세상을 일주일 먼저 떠난 그의 친구. 그리고 그 친구분이 손을 잡고있는 깡마른 남자아이, 전원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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